오늘은 많은 일이 있었다. 대체로 좋지 않은 것과... 좋은 것을 포함해서.
일단.. 입원 한 이후로 계속해서 잠깐만 버티면, 조금만 참으면 금방 내 일상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곧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회사와 복직 관련으로 면담을 하고 왔다.
내 몸 상태는, 지금은 대부분의 수치들이 정상 상태로 많이 돌아왔고, 앞으로 6개월 동안은 사실상 몸과 컨디션에 관계 없이 완치를 위해 나머지 청소.. 공고 치료 일정만 잡혀 있는 상태이다. 물론 관계 없다는 것은 막 굴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고... 좋든 나쁘든 공고치료는 지속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별로 의미 없어졌지만, 이번 휴직 기간이 끝나면서 동시에 복귀를 하기 위해 이런 저런 준비와 노력을 미리부터 하고 있었다.
오전 제일 일찍 치료 예약을 하면, 9시 ~ 10시 사이로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주사 시간이 두 시간 정도 소요되니, 여유있게 12시 반 정도면 모두 완료되고, 대중교통이 아닌 차량으로 출근 할 경우 오후 업무 시작 시간인 2시에 충분히 맞춰 도착할 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오전에 치료 후, 오후 컨디션을 1달정도에 걸쳐 관찰했다. 주사 후 부작용인 심장이 빨리 뛴다거나, 땀이 체온에 관계 없이 난다거나, 하는 증상들은 있었지만, 5시간정도, 혹은 그 이상 자리에 가만히 앉아 지속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미리 슬랙에서 두 달 동안 변경된 사항들을 꾸준히 확인해오고 있었다. 변경된 것들에 당황하거나 막히지 않고 바로 업무를 이어서 진행할 수 있도록. 미리부터 읽어보고 확인하려고 저장된 슬랙 메세지들은 두 자리를 넘는 수였다.
하지만, 역시 삶은 뜻대로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인사팀의 내부 논의는 남은 공고 치료 기간 동안, 그러니까 11월 까지 쭉 휴직을 유지하고 복귀했으면 하는 뜻을 보였고, 겨우 한달 남았으니 처리가 번거로웠는지 아예 올해 내내 휴직을 했으면 했다.
나는 복귀를 위해 이런 저런 데이터들을 미리 쌓아 왔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경험으로 풀어 설명했다. 이번 휴직이 끝나는대로 바로 복귀했으면 하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 건강 문제를 근거로 들어 휴직했으면 하는 것들은, 내 몸을 내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니, 충분히 반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납득하게 된 이유는...
인사팀은 복귀 하더라도 초과근무를 전혀 허용하지 않을 거라는 결정을 먼저 통보했다. 그리고 그에 더해, 한정된 시간으로 내가 업무를 충분히 해낼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초과 근무를 전혀 못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일정마다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끝맺음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아직 신입인 내가 그렇게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는 절대 자신하지 않고, 한번 마감 완료한 일이 추가적인 문제 없이 깔끔하게 완료 될 것이라는 자신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초과근무 없이 일을 책임지고 처리한다는 것은.
처리가 될 만한 아주 작은 일들만 맡아서 진행하거나, 손대는 일 마다 마무리 하지 못 하고 다른 동료에게 매번 떠넘겨야 한다는 현실을 의미했다. 둘 다 명백히 심각한 단점들이 보였기에, 특히나 후자처럼 정말 민폐를 끼치는 것은 죽기보다도 더 싫었기 때문에, 나는 복직 의사를 포기하고, 내년에 복귀하겠다고 인사팀과 합의할 수 밖에 없었다.
합의 후 휴직계를 작성하고, 배려해주신 팀장님을 따라 팀원들과 티타임도 가졌고, 저녁도 함께 하면서 오랜만에 내가 정말 있고 싶었던 장소에 함께하는 감각을 느꼈다. 내가 바란 것은 그다지 큰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추가로 야근을 하지 않은 동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집에 들어오니 기분이 정말... 정말 좋지 않았다. 마치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져 파도에 흔들리는 기분.
감정들에 이유를 붙여 보자면,
나 자신이 나 혼자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아이도 나름대로 그 자신이 믿는 것들을 내보였을테지만, 현실의 이유와 이해관계는 훨씬 복잡했고, 정교했고, 그 중 일부는 아이가 보기에도 납득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정론이었다. 그 안에서 자신 혼자만이 믿는 것을 들이밀면서 떼 쓰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그저 잘 하고 싶었을 뿐인데.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억지를 부리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두 달 동안 오직 목표로 삼아왔던 것에 대한 상실을 느꼈다. 병의 위중함이라던가, 이런 저런 불편함이라던가, 그런 것들에 관계 없이 오직 내 일을 하러 돌아가는것 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그 목표를 위해 마음도 꺾이지 않도록 단단히 유지했고, 몸도 최대한 건강해지도록 하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 철저하게 지켜왔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미리부터 해결하기 위해 준비해왔다. 하지만 목표가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나는 또 다시 6개월이라는 유예를 두고 던져졌고, 다시 계획을 세우기에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사소하지만, 내가 게임개발을 하러 온 이유인 다같이 열심히 매진해서, 출시까지 이르는 이 멋진 경험에 나는 시기상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 업을 해 간다면 또 다른 기회와 마주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처음 선택한 회사의 처음 만들어 사람들에게 내 보이는 내 게임..이라서.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나머지 하나는 뭔가 거창한 대의를 가지기에는 부족하지만, 매우 개인적인 이유로, 지금 이 시기에 복귀하고 싶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조금 조급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말 기다려오던 순간이었는데. 일부 해소되기도 했지만, 조바심은 항상 모든 일을 망치는 것도 알지만, 역시 정말 기다려오던 순간이었다.
이런 이유들로 착잡한 감정에 잔뜩 휩싸여서, 아무런 일도 의욕이 나지 않는다. 당장은 그나마 매일 치료라도 하러 가지만, 다음 달은 치료를 쉬는 달인데, 하루 종일 아무 일 없이 있어야 하는 나는 뭘까. 백수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역시 사람은 든 것보다 난 것을 더 잘 느끼는 것 같다.
뭐 그래도 이런 감정은 또 지금뿐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또 그것에 매진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전과 다른 점은, 이런 흔들리고 있는 내 상태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도움을 청해도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어쩌다 보니 일기에는 자꾸 무거운 감정만 남기게 되나.. 싶기는 한데, 뭐 그게 처음부터 내 목적이었다. 두서없이 시작해서 마무리 없이 그저 생각을 밖으로 꺼내 인식한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그러니까 이렇게 끝.